서울역에서 '청년 이봉창 의사'를 만난다

이봉창 의사 전시회가 서울역 2층 도심공항터미널에서 11월 30일까지 열려
'상신서'와 한인애국단 입단 사진 등 독립운동 관련 자료 14점과 사진 30점 전시

이봉창 의사 순국 90주년을 맞아 뜻깊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독립기념관은 11월 30일까지 서울역내 2층(3번 게이트 근처) 도심공항 터미널에서 <역무원 이봉창의 독립운동 이야기> 전시를 공동개최하고 있다.








이봉창 의사의‘상신서’와 한인애국단 입단사진 등 독립운동관련자료 14점과 사진 30점등이 전시되고 있다.
 
이봉창 의사는 1919년부터 1924년까지 용산역에서 수송담당역무원으로 근무했던 적이 있다.

1932년 1월 8일 이봉창 의사는 도쿄의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끝낸 후 경시청 앞을 지나가던 히로히토[裕仁] 일왕에게 폭탄을 투척하였다. 그러나 의거는 실패로 돌아갔고 이봉창 의사는 현장에서 즉시 체포되어 그 해 10월 비공개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고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일왕 암살에는 실패했지만 ‘동경의거 이 의거는 중국인들의 항일의식에 큰 영향을 끼쳐 일제가 중국의 항일운동을 무력으로 억압하고자 1932년에 일으킨 제1차 ‘상해사변’을 촉발시켰고, 이어서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 의거’가 거행되었다는 점에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앞서 문화재청은 10월 31일 이봉창 의사가 의거를 일으키기전에 항일독립운동단체에 전달한 선서문을 국가 보물로 지정 예고 했다.보물로 새롭게 지정 예고된 이봉창 의사 선서문은 1931년 12월 13일에 작성된 것으로, 그가 일본에 대한 항쟁을 다짐한 국한문혼용 선서문이다. 이 선서문은 김구(金九)가 결성한 항일독립운동단체인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에 제출된 것이다.


이봉창 의사 선서문은 1931년 12월 13일 이봉창 의사가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으로 입단하면서 선서한 당시 작성된 것으로, 이 의사의 의거 행적과 한인애국단의 활동, 항일투쟁의 역사를 증명하는 귀중한 역사적 산물이다.


이듬해 훙커우공원에서 의거를 단행한 윤봉길 의사가 작성한 선서문(1972.8.16. 보물 지정)과 함께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유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 날 서명을 마친 이봉창 의사는 안중근 의사의 막내동생이자 한인애국단 임원이었던 안공근(安恭根)의 집에서 양손에 수류탄을 들고 선서문을 가슴에 단 채 기념사진을 촬영했으며, 이 때 찍은 흑백사진이 전해지고 있다.


선서문은 ‘나는 적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야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야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서하나이다.  대한민국십삼년십이월십삼일 선서인 이봉창 한인애국단앞’이라고 적혀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독립기념관은 서울역 전시가 끝나면 천안 아산역 등 전국주요역사를 순회하며 전시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저작권자 ⓒ 뉴스모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안후정 기자 다른기사보기